박기정의 헥사
헥사를 알게 된 것은 19년도에 대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였다. 영상에 대한 막연한 꿈만 갖고 들어온 새내기에게 촬영 장비를 대여할 수 있는 헥사에 무조건 가입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카메라와 조명은 생소했지만 일단 세미나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헥사 세미나에서 장비를 설명하는 선배 분들의 모습이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경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장비를 다루는 역량을 기르겠다는 나름의 목표가 생겼다. 선배 분들의 촬영을 따라 다니고, 내 나름대로의 촬영 세팅을 해보고,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게 되면서 영상을 만드는 것에 더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빌 때마다 무작정 촬영장에 따라갔던 나(왼)의 최후
촬영 장비를 다루면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어느 정도의 이해도를 갖추게 되면 창의력을 발휘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비를 분해해 다른 곳에 사용하거나, 장비 여러개를 나사로 고정해 한번에 사용하는 등 나의 의도와 취향에 따라 촬영 세팅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재미있다.
최근에도 육각 렌치를 줄로 갈고 고리에 달아 나만의 연장을 만들기도 하고, 장비를 조합해 새로은 촬영 세팅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는가보다.
현재는 헥사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나름 꿈에 그리던 근로 자리이다. 덕분에 하루종일 실컷 촬영 장비를 만지고, 촬영 장비에 대해 몰랐던 것들에 대해 배우는 중이다.
꿈만 같던 헥사 근무에도 단점이 있다면, 집을 가지 않는다는 것 정도. 도보 15분 거리에 자취방이 있지만 헥사가 제2의 집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밤을 지새우는 게 자취방이 생기면 고쳐질 거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자취방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 늦게까지 있어도 된다"는 논리로 밤을 지새고 있다.)
박기정의 카메라
카메라는 참 신기한 매력을 가진 도구이다. 사실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주변환경을 빛 정보로 기록할 수 있다는 건 거의 마법에 가까운 성능이다. 게다가 단순히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자의 의도와 연출에 따라 다른 질감, 다른 구도, 다른 감정을 지닌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매력적이다.
카메라가 친숙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제는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도 고가의 카메라 못지 않은 사진과 영상을 제작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탭 한번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가끔 생각해보면 이 시대에서는 카메라가 소통에 있어 필수적인 도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도 카메라가 있다. (소통을 위한 도구는 아니지만,)
내가 너무나 애지중지하며 보관하고 있는, a7m3가 그것이다.
오늘의 주인공
영상 제작자로서 개인 카메라를 사보니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매우 흡족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첫 맥북이 생겼을 때 황홀에 빠져있던 몇주 간의 감정과 비슷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장비든 달아볼 수 있을 것 같고, (그걸 실현하려다보니 장비병에 걸리고...)
말하기 부끄러운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얼마 전 나의 카메라로 처음 돈도 벌어봤다. 처음으로 촬영을 부탁받아 갔던 현장을 잊지 못한다. 내가 든 카메라로 누군가의 소중한 영상을 만들어 줄 수 있다니, 그것도 나의 의도와 나의 움직임이 반영된 나의 촬영본으로.
5시간 정도를 짐벌을 들고 있어야 했지만 지치지 않았고, 오히려 하루종일 에너지가 끓어넘치는 기분이었다.
내가 돈을 버네 돈을 다 버네
몇 달 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던 말이 있다. "나는 이제 그냥 카메라를 들기 위해 팔운동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였다.
(css 과제를 위한 웹페이지에도 이 문구가 적혀있다.)
당시에는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나는 이제 정말 카메라를 더 잘 들기 위해 운동을 하고, 몇 시간 째 촬영 장비를 들고도 웃고 있는 사람이 되어었다.
이 모든 변화가 "내 카메라"가 있어준 덕분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와 함께 많은 경험을 쌓아나갈 카메라, 어서 모니터도 달아주고 이것저것 챙겨줘야겠다.
박기정의 영화
친구들에게 게임이 있다면, 나에게는 영화가 있다.
사실 어릴적에는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를 즐겨 보지는 않았다. 꽤 유명한 영화니 궁금증이 생기는 영화들은 가끔 찾아 보기도 했지만, 20살이 되어서 영화의 재미를 느끼고 더 능동적으로 영화를 찾아 보게 된 것 같다.
영화의 매력은 암묵적으로 설정된 90 ~ 180분의 러닝타임에서 오는 것 같다. (물론 더 짧은 영화도, 더 긴 영화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무언가를 경험하기에도, 서사를 쌓아나가기에도, 감정을 터트리기에도 적당한 시간. 그 시간동안 영화를 통해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랍고, 그런 경험의 러닝타임을 알차게 보낸 후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영화의 재미를 붙인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영화를 보았다. 친구들과 PC방을 가서도, KTX를 타고 본가에 갈 때도 영화를 봤다. 나의 영화 시청은 군대에서도 계속되었는데, 휴대폰으로, TV로, 가끔은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몰래 컴퓨터로 보던 영화들은 쌓이고 쌓여 전역을 할 때 즈음에는 311편이 되었다.
이렇게 머릿속에 쌓인 영화 속의 요소들이 작업을 할 때 레퍼런스로 작용할 때가 많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아 그거..!" 하면서 특정 장면이 아른거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묘한 짜릿함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그런 장면 어느 영화에 나와" 하고 말해줄 때에도 그렇다.
하지만 영화를 추천해주는건 잘 못한다.
표현을 정확히 하자면 레퍼런스로서의 영화를 추천해주기는 쉽지만, "이거 재밌으니까 한번 봐봐"하고 들이미는 건 잘 못 하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애정하게 되는 영화를 몇 편 추려보자면...
순서와 선호도는 무관하며, 매우 주관적인 기준으로 추려보았다.
또한 따로 코멘트를 달지 않고,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만 한 줄씩 달아놓았다.
이거다 싶으시다면 한번씩 감상해보시길.
- 1) 애니 홀
“I guess that's how I feel about relationships. They're totally crazy, irrational, and absurd, but we keep going through it because we need the eggs.”
- 2) 베이비 드라이버
" 'Retarded' means slow. Was he slow?" / "No."
- 3) 신의 손
“So, you got something to say? Or are you an asshole like everyone else?”
- 4) 노킹 온 헤븐스 도어
"In heaven, they're talking about nothing but the sea and how wonderful it is."
- 5)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Of all the places I could be, I just want to be here with you."
- 6) 델타보이즈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and the walls came tumblin' down."
- 7) 더 레슬러
"You know what? The only one that's going to tell me when I'm through doing my thing is you people here."
- 8) 블러드 심플
"I'm not afraid of you, [Spoiler]."
- 9) 판타스틱 Mr.폭스
"You Are, Without A Doubt, The Five And A Half Most Wonderful Wild Animals I’ve Ever Met In My Life."
- 10) 하나 그리고 둘
"Daddy, you can't see what I see and I can't see what you see. So how can I know what you see?"
박기정의 TMI
1. 이 문단은 원래 박기정의 연락처를 나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배경이 되는 복도 샷을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지금 이 글을 적기 직전까지도 연락처 정보만 나열할 생각이었지만, TMI를 푸는 것이 더 흥미로울 것 같아 급 선회하기로 했다. 통화를 하는 내 모습이 말이 많아보이기도 하고.
2. 개인적으로 신봉하고 있는 (내가 만든) 이론이 있는데, 그것의 이름이 마침 <뷰파인더 이론 (또는 카메라 이론)>이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나의 육체는 카메라고, 나의 정신은 뷰파인더이고, 나의 세상은 관객이다. 타인이 살아가는 세상을 내가 경험할 수 없듯이, 나의 세상은 나의 감각으로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나의 세상은 나를 통해서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삶에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세상은 내가 무너지지 않게 힘을 주고 지켜줄 것이다. 하루종일 컨텐츠를 정주행하고 있는 관객이, 이 세상에 유일한 카메라 한 대를 어떻게 부서지게 두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릴 적부터 신봉하고 있다. 이 웹페이지의 컨셉을 뷰파인더로로 정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3. 이 웹페이지는 여차하면 구성방식을 유지한 채 나의 개인 포트폴리오 웹페이지로 변경될 수도 있다. 마음에 걸리는 점은 일단 복도 샷을 다시 촬영해야 한다는 것이고, 개인작업이 늘어날 때마다 더 긴 복도를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4. 복도 촬영에는 동준, 명서가 수고해주었다.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은 아직 아니고 그냥 내 친구들이다.
5. "영화보는 사람" 부분에서 팝콘 포장지가 선명하게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20분 걸리는 마트에서 전자레인지 팝콘을 사왔는데, 결과는 보이시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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